1화. 나비의 그림자.

한 번쯤 그런 상상을 해본 적 있다.
너는 나를 사랑하고.
나는 너를 사랑하는.
그리하여 우리가 행복한 결말에 이르는 그런 상상.

* * *

눈부신 초여름의 어느 날.
그날은 공원에서 책을 읽기로 한 날이었다.

몰래 빠져나오느라 약속 시간에 늦어서 전속력으로 달려가던 중이었다. 저 멀리 네가 보여서 손을 흔들었다.

‘이안! 이안 라디우스!’
‘프레하. 그러다가 넘어져.’

솨아아—
흔들리는 나무 그늘 아래에 앉은 너는 언제나처럼 차분하게 나를 맞아주었다. 바람에 실려 온 풀 내음 사이로 익숙한 베르가못 향이 코끝을 간질였다.

‘미안, 헉, 오래, 헉, 기다렸어? …헥.’
‘괜찮아.’

숨이 턱끝까지 차올라 헉헉대는 나를 보며 너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여름 하늘빛 눈동자 가득 웃음이 어렸다.

‘자.’

너는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 옆자리에 펼쳤다. 네 옷자락에 든 풀물은 신경 쓰지도 않고.
나는 네 손수건 위에 앉았다.

언제부터였을까? 이런 배려가 당연해진 게.
기억을 더듬어봐야 어차피 떠올릴 수 없겠지.

‘뭐 읽으려고?’
‘로맨스 소설.’
‘앗, 미리 말하지! 나도 그걸로 가져올걸.’

당시 네 취향에 맞추겠다고 ‘왕국의 역사와 정치, 위대한 신학에 관하여’라는 거창한 제목을 가진 두꺼운 양장본을 가져갔다. 울상을 지으며 가방에서 꺼낸 책을 보고 너는 역시나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따뜻하고 큰 손. 조금씩 도드라지는 뼈마디는 남자의 것이라기보다는 소년의 것이었다. 아직 채 자라지 못한.

‘나 신경 쓰지 말고 너 좋아하는 거 읽으라니까.’
‘그래도. 너도 내가 좋아하는 로맨스 소설 읽는다며. 그럼 나도 네가 좋아하는 거 읽어야 수지타산이 맞지.’
‘갑자기 수지타산이 왜 나오는 거야?’
‘흥, 내 맘이야.’

푸흐, 물방울이 터지는 소리를 내며 우리는 작게 웃었다.

나뭇잎에 조각난 햇살이 눈가에 닿았다.
유순한 눈매가 다정하게 휘고 너의 옅은 갈색 머리가 추수녘의 들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