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눈떠보니 날벼락

“그래서, 네게 결혼을 제안하지.”
“네?”
 
에블린 그레이, 아니 박하나는 제 귀를 의심했다. 방금 이 남자가 뭐라고 한 거지? 눈앞의 남자는 에스발트 왕국의 적법한 황태자, 킬리언 아르덴이었다.
 
“진짜 결혼을 하자는 게 아니야. 일년. 단 일년짜리 계약이다.”
 
에블린은 당연하다는 듯 헛소리를 지껄이는 남자를 어처구니없다는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교통사고를 당하고 깨어나 보니, 자기가 읽던 소설 속에 빙의한 것도 황당한데 왕족에게 청혼을 받는 건 더 황당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황당한 사실은 따로 있었다.
이 눈앞의 남자 역시, 자신처럼 대한민국 21세기에서 온 ‘빙의자’라는 것이었다.

“전하, 제 정신이십니까? 저는 일개 말단 공무원일 뿐입니다.”
“원래 네 신분은 백작 영애잖아. 안그래, 그레이 백작영애?”
성만 남은 껍데기뿐인 백작 영애였다. 지독한 자금난으로 영지고 재산이고 다 팔아치운 뒤, 간신히 지방의 낡은 저택 하나만 지키고 있는 처지였다. 누군가 그녀를 백작 영애라 부른다면 그건 명백한 모욕이었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민주시민 박하나에겐 아무래도 상관없는 사실이었지만.

“저는 그냥 평화롭게 살고 싶은데요.”
“내 눈에 띈 이상 어차피 평화란 없어. 얼마면 돼? 연봉은 원하는 대로 맞춰줄 테니까.”
남자의 눈동자가 서늘하게 빛났다. 황태자는 천천히 의자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걸어왔다. 그가 가까이 다가올수록, 압박감에 소시민 박하나의 심장은 짜부라지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어쩌다 이렇게 됐지?

박하나는 아득해지는 정신을 붙잡으며, 이 에스발트 왕국에 처음 떨어졌던 순간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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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떠보니 날벼락이군’이라는 표현이 딱 적절할 것이다. 회사에서의 마지막 근무 날까지 야근을 하고 퇴근하는 길이었다. 박하나는 몽롱한 정신으로 횡단보도를 건넜다. 분명히 파란불이었다.
그러나 정신을 차리고 보니 눈부신 빛이 자신을 덮쳤고 그대로 끔찍한 고통과 함께 정신을 잃었다.

얼마나 시간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