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솨아아. 

샤워기 아래 선 희수가 무거운 눈꺼풀을 느릿하게 깜빡였다. 약기운이 도는 건지 머릿속이 멍했다. 씻는 법을 잊은 사람처럼 가만히 서 있던 희수는 물이 튀어 오른 뺨을 힘없이 쓸어내리며 돌아섰다.

수건으로 머리 물기를 닦아내다 벽에 걸린 샤워가운으로 시선을 옮겼다. 지무결이 입고 나오라던 것이었다. 

‘아, 어쩌지.’ 
‘더 놀고 싶어졌는데.’
‘기회를 줄게.’

희수는 이제야 놀자던 그의 말을 완전히 이해했다. 조금 전 제게 약을 먹이고 입안까지 샅샅이 살피는 지무결을 보면서 그가 바라는 게 무엇인지 어렴풋이 짐작은 했었다. 그의 검은 눈동자가 알 수 없는 열기로 일렁이고 있었으므로.

물기가 남은 몸 위에 가운을 두른 희수는 젖은 손으로 문고리를 돌렸다. 열린 틈 사이로 뿌연 습기가 저보다 먼저 나갔다. 

흩어지는 습기 너머로 거실 소파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는 지무결의 모습이 보였다. 무겁게 내려앉은 눈을 깜빡이자, 그가 입술을 비스듬히 올리며 잔을 내려놓았다. 테이블 위에 놓인 유리잔에서 잘그락, 얼음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술을 마시는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이리 와.”

소파 위에 오른팔을 내려놓은 그가 눈짓으로 그 아래를 가리켰다. 희수는 말없이 걸음을 옮겼다. 그의 곁으로 다가가는 한 걸음마다 발바닥이 늪으로 푹푹 빠져드는 기분이었다. 

“머리 잘 말려야지.”

그가 소파에 앉은 희수의 젖은 머리카락 끝을 매만지며 낮게 웃었다. 

“여기 언제까지…있어야 돼?”

희수가 초점이 흐려진 눈으로 물었다. 그러자 비스듬히 올라간 입술 사이로 웃음기 섞인 숨이 흘렀다. 아래를 내려다보던 긴 눈매가 일순 서늘해졌다. 

“글쎄.”

매끈하게 뻗은 손가락 사이로 머리카락이 감겼다가 풀어지기를 반복했다. 희수는 옅은 쌍커풀 아래 빼곡하게 자리 잡은 그의 속눈썹이 느릿하게 내려가는 걸 바라보다 가슴을 짓누르는 듯한 숨을 옅게 내쉬었다.

“내가 질릴 때까지?”
“…….”
“왜? 네가 원하는 대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