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팅포인트(녹는점)

폭설이 내리는 밤이었다. 

도하가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며 맥주를 마셨다. 

눈보라 속에서 멀리 별채의 불빛이 어른거렸다. 별채는 HS의 입주 사용인들이 지내는 곳이었다.

도하의 머릿속에 반사적으로 한사람이 떠올랐다.
  
강이수. 별채에 살면서도 얼굴한번 보기 힘든 여자애.

이수는 20년 가까이 HS본가의 집안살림을 맡아 하고 있는 입주가정부 지선의 딸이었다. 
꽤 어린시절 기억부터 늘 도하의 옆에 있던. 오빠 오빠 하며 하도 따라다녀서, 때로는 귀찮기 까지 했던 아이.

하지만 언제부터였을까. 몸이 자라고 어느 순간 부쩍 멀어진 이수였다. 

같은 집에 사는데 학교에서 오며가며 보는 것이 전부가 될만큼. 그것도 도하가 대놓고 끌어당겨야 얘기를 나눌 수 있을만큼. 이마저도 도하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부터는 없는 일이 됐다.

눈에서 멀어지면 잊어버려야 정상인데, 이상하게 이수의 모습은 더 자주 선명하게 도하의 머릿속을 차지했다.   

하얀 얼굴에 포니테일로 가지런히 묶은 머리. 자연스럽게 흘러내린 앞머리. 진갈색 눈동자와 곧게 뻗은 콧대. 그 아래 도톰하게 자리잡은 입술까지.

도하가 짜증섞인 한숨을 내쉬며 단숨에 맥주를 들이마셨다. 
또 이수를 생각하고 있었다. 생각하지 않으려 할 수록 더 자주, 선명하게 이수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상하게. 

어차피 이것도 이젠 소용없나. 내일이 되면 여길 떠날테니. 

오늘 저녁 식사에 가족은 물론 온 집안 사용인들이 인사할 때도 이수는 없었다. 
아무리 소원하게 멀어졌다고 해도 그렇지. 서운한 건지 심술인 건지. 도하의 마음에서 묘한 기분이 꿈틀거렸다. 

[똑똑-]

노크 소리가 도하의 머릿속 이수에 대한 생각을 끊어주었다. 
평소였다면 귀찮은 마음에 문을 열지 않았겠지만 이상하게 문고리에 손이 갔다.

그리고 문 앞에는 

강이수?

도하의 눈이 경계심없이 커졌다.  

이수가 과일과 안주거리가 담겨진 쟁반을 들고 서 있었다.

이수가 도하를 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