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

<제목><대군의 밤을 훔치다>
<작가명><지수린>

원고

여름이었다.
개울물은 햇빛을 받아 은빛으로 부서지고, 느티나무 잎사귀는 바람에 따라 천천히 숨을 쉬고 있었다. 짙은 그늘 아래, 오래된 정자 하나가 고요히 놓여 있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물소리와 뒤섞여 둥글게 퍼져 나갔다.

정자 안의 노파는 허리가 굽었지만, 붉은 실로 뜨개질하는 손놀림은 곧고 정교했다.
한 여자아이가 홀린 듯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는 천천히 정자 쪽으로 다가왔다. 

“할머니, 그거 뭐예요?”

노파는 대답하지 않았다. 바늘이 실을 스치는 소리만 잔잔히 이어졌다. 바구니 안에는 오직 붉은 실타래들뿐이었다. 손이 저도 모르게 움직였다.

툭.

아이의 손끝에 닿은 실타래 하나가 바구니 밖으로 굴러떨어졌다.

“어…!”

실타래는 정자 아래로 데구르르 굴러갔다. 아이는 당황해 급히 따라 내려갔다. 잡으려 할수록 멀어지는 실타래는 마치 따라 오라는 듯 느릿하게 멈추지 않고 굴렀다.
그러다 어느 소년의 발밑에서 멈춰 섰다.
또래보다 키가 크고 무심한 눈매를 가진 소년이었다. 그는 제 발치에 닿은 실타래를 내려다보더니, 귀찮다는 듯 발끝을 들었다.

“아, 안 돼!”

아이가 울상이 되어 달려왔다.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미안해… 내가 떨어뜨렸어.”

소년은 말이 없었다. 아이가 실타래를 집어 드는 순간이었다.

스르륵.

풀려나온 실 한 가닥이 바람을 타고 소년의 손목을 휘감았다. 둘의 움직임이 동시에 멈췄다.
소년의 손목 위로 붉은 실이 가늘게 감겨 있었다. 처음부터 그 자리를 알고 있었다는 듯, 아주 자연스럽게.
소년이 미간을 찌푸렸다.

“이거 뭐야.”

아이는 여전히 실끝을 붙잡고 있었다. 당황해 서둘러 다가왔다.

“잠깐만… 내가 끊을게. 실수야, 미안.”

작은 손으로 실을 잡아당겨 보았지만 끊어지지 않았다. 잡아 뜯고 매듭을 지어 보아도 소용없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던 소년이 낮게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