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 프롤로그
 
첫사랑. 혀끝을 간지럽히는 순정. 한때는 복숭아처럼 발그레해진 뺨으로 그런 사랑을 꿈꿨다. 소설 속 영원한 사랑, 풋풋한 스물.

“이 저택에서 내가 가질 수 없는 건 없어. 주사은, 너까지도.”

선명한 그날의 기억. 

보송한 소설 속 첫사랑과 달리 서늘했던 눈빛과 진득하게 섞인 혀끝으로 느껴지는 단내의 현실까지.

‘너는 내가 주는 대로 물고……, 삼켜.”

침대에서 벌떡 일어난 사은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가슴을 부여잡았다. 마치 악몽에서 깨어난 듯 입술 끝이 파르르 떨려왔다. 꿈이었다. 어김없이, 지치지도 않고 무의식을 잠식한 기억. 사은은 이 꿈이 영원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랫입술을 잘근 물었다.

주사은에게 첫사랑은 삶 전체를 도려내도 기어코 흔적을 남길 지독한 시절이었다. 겨우 잊어가는 줄 알았지만 여전히 가차 없이 그가 떠올랐다. 사은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정신을 차리기 위해 애썼다.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잠에서 깬 덕에 일찍이 출근 준비를 끝낼 수 있었다.

두 달간의 파견을 마치고 오늘 막 회사로 복귀했다. 자리에 앉은 사은이 한숨을 돌리기도 전에 윤 팀장이 다가왔다.

“사은 씨, 지금 시간 괜찮아?”

“네, 무슨 일로…….”

“다름이 아니라 전무님께서 이번 팝업 관련 보고를 자세히 듣고 싶다고 하셔서. 사은 씨가 담당자라 직접 가야겠어.”

양손에 든 두꺼운 파일철들을 책상 위에 내려놓은 사은의 눈엔 의아함과 약간의 당혹스러움이 묻어났다. 모브백화점 MD 기획팀에 올해로 2년 차를 넘긴 일반 사원. 그런 사은이 전무급 임원에게 직접 보고서를 가져다 브리핑을 진행한 적은 아직 한 번도 없었다. 

어리둥절한 기색을 숨길 수 없는 사은의 앞에선 윤 팀장도 영문을 모른다는 뜻으로 어깨를 작게 으쓱였다.

“전무님이 이번 현장 담당자한테 직접 보고를 듣겠다고 했대. 어휴, 벌써 머리가 지끈지끈하다.”

사은은 혹시 몰라 보고서를 비롯해 양팔 가득 상세한 자료까지 전부 챙겼다. 윤 팀장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