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내게 중독시킨다> 원고

제1화 - 포로가 된 황녀

이사델 라센트의 열아홉 번째 생일 연회는, 그야말로 피바다가 되었다.
라스테인 제국의 영예로운 제1황녀의 탄생일.
그날은 온 나라와 황실이 축복해야 마땅한 날이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사델 황녀에겐 그런 행운 따위 허락되지 않았다.
행운은커녕, 가장 최악의 불운이 그녀를 덮쳤다.
아버지인 아데루스 황제는 반정 세력에게 붙잡혀 참혹하게 목이 잘렸고,
이복동생인 다섯 명의 황자들까지 전부 무참히 살해당했다.
하루아침에, 서 대륙의 대제국, 라스테인의 라센트 황가는 멸족을 당했다.
그리고 도살장으로 전락한 연회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존재는—
생일의 주인공이었던, 이사델 라센트뿐이었다.

***

황궁 서쪽 탑.
유폐된 이사델은 차가운 벽에 몸을 기댄 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흑청색 머리카락이 유난히 창백한 얼굴 위로 길게 늘어져 있었고, 연한 회청색 눈동자는 생기를 잃은 채 텅 비어 있었다. 살아 있는 사람의 눈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였다.
벽을 타고 스며든 냉기가 살갗을 파고들었지만, 이사델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대로 얼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가족이 모두 죽었다는 사실도, 어째서 자신만 살아남았는지도,
이제는 떠올릴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원래라면 공포와 슬픔이 밀려왔어야 할 어젯밤의 기억조차, 지금은 그저 머릿속을 조용히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갑작스레 들이닥친 반정세력의 습격에도,
아버지의 머리가 잘려 바닥을 구르던 순간에도,
황궁 전체가 피로 물들어 가던 그 모든 순간에도—
이사델은 울지 않았다.
비명을 지르지도 않았다.
그저 자신의 인생이 서서히 멸망해 가는 광경을, 타인의 일처럼 무표정하게 바라보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것은 분명, 정상적인 반응은 아니었다.
똑똑.
가벼운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오랫동안 황녀를 보필해 온 하녀, 로쉐였다.
“황녀 전하.”
대답은 없었다.
‘충격이 너무 크시겠지….’
로쉐는 속으로 조용히 한숨을 내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