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가량의 전통을 자랑하는 튈 크리예프는 전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피아노 콩쿠르로 심사가 가장 까다롭기로 유명했다. 특히나 역사가 전무한 동양인을 상대로는 더더욱.

그런 튈 크리예프에서 첫 동양인, 그것도 한국인 우승자가 선발된 건 이례적인 일이었다.

성지혁은 단번에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하루아침에. 물론 그가 지금껏 일궈온 연습량에 비할 것 같으면 ‘하루아침’ 따위의 사소한 단어로는 설명할 바가 못 되었지만.

국내의 클래식 덕후들은 지혁의 수상 소식을 듣고 열광했다. 역대 튈 크리예프 수상자들을 덕질하던 그들이 떠오르는 신인, 그것도 같은 한국인을 칭송할 수 있게 되었음에.

[근데 이 정도면 성지혁은 호로비츠 환생 아님?]
[또 호로비츠 빠들 나오네. 진짜는 루빈스타인 이라니까.]
[호로비츠, 루빈스타인, 성지혁 렛츠고.]

클래식 커뮤니티에서는 지혁을 거의 신격화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아주 전설적인 대가들과 이름을 나란히 하며.

대중들은 앞으로 지혁의 행보를 기대했다. 당연히 연주 투어를 돌 것이라고 믿었으며 이른 시일 내에 내한하여 리사이틀을 열어주기 기대했다.

그리고 그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지혁은 우승자 콘서트에서 성공적으로 연주를 끝마치고 바로 다음 날 귀국하는 비행기를 탔다. 그가 귀국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복학하기 위해서.

***

한국 대학교 음악학과 2학년으로 성지혁이 복학한다는 소식 때문에 방학내 이음의 핸드폰이 달아올랐다.
친한 동기뿐만이 아닌 얼굴만 아는 사이였던 선후배들까지 각양각색으로 연락을 보내왔다.

1년 동안 조용히 학교에 다니다가 콩쿠르 준비에 전념하느라 곧바로 휴학했던 지혁은 입학부터 유명 인사였다. 그는 음대에서 보기 드문 190cm 장신이었으며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지금, 매일 같이 화두에 오르는 미남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세계적인 콩쿠르에서 상을 타고 복학한다니, 얘기를 안 꺼낼래야 안 꺼낼 수가 있겠는가.

[이음아, 넌 성지혁 한국 오고 나서 봤어?] 
[너랑 친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