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오랜만이야, 이영아.”

따스한 봄바람이 부는 교정의 계단 끝에서 이영과 도훈이 마주쳤다.
3월은 학기의 시작이다.

신임 교수로 부임한 이영은 부디 도훈을 마주치지 않기를 바랐다.
같은 학교지만, 그만큼 넓었으니 잘 피해 다닌다면 만나지 않을 수 있을 줄 알았다.

작은 소망은 불과 몇 시간 만에 깨어져 버리고 말았지만.

“나를 아는 척할 염치가 있어?”
도훈을 마주한 이영은 저도 모르게 가시 돋친 말이 튀어나왔다.

“당신이 내게 조금이라도 미안한 마음이 있으면, 날 보고도 아는 척 말아야지. 그냥 지나갔어야지. 어떻게 그렇게...”
울분이 차오르는 데는 얼마의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아무렇지도 않을 수가 있어?”그러고도 네가 사람이야?

원망의 목소리를 간신히 갈무리했다.

그에 반해 전 부인을 바라보는 도훈의 표정은 너무나도 덤덤해서.
이영은 당장이라도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았다.

눈앞에서 사라지라 소리치고 싶었지만, 벽 너머가 모조리 군중이다.
그들에게 학기 첫날부터 보기 좋은 구경거리가 될 수는 없다.

속으로 비명을 삭인다.

“이영아.”

그가 그녀를 부른다.
언젠가는 달콤했던 그 이름이 이제는 지겹도록 삭막하게 이영의 목을 옥죄인다.

이영은 대답 없이 도훈을 노려봤다.

“다 끝났어, 이영아. 이제 돌아가자.”
그의 처연한 눈동자를 보고 있자니 화가 사무쳤지만, 이제는 기력조차 없다.
이제 와서?
“어디를 돌아가? 내가 당신이랑 갈 곳이 어디 있다고?”“집에 가자.”

바닥이라고는 칠 수 없을 줄 알았다.
이미 있는 곳이 바닥이라.

그런 그녀의 옷자락 끄트머리를 기어코 부여잡고 더 아래까지 끌어내린 그가 집으로 돌아가잔다.

“다 끝났다 했지?”
당신이 꿈에 그리던 일들.

“나랑 도훈씨도 끝났어. 이미 오래되었고. 그걸 몰라?”
이영은 힘이 전부 빠진 목소리로 작게 읊조렸다.

“그만해줘. 날 위해서. 부탁이야.”
좋았다.
사랑도 했던 것 같다.

그런 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