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세상이 변했다.

기나긴 혁명의 끝은 왕정의 몰락이었고, 신분보다 자본이 우선시되는 세상이 도래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여성 음악가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뛰어나다는 이유만으로는 무대에 오를 수 없었으니까.

'아무리 바뀌어도 여자를 위한 세상은 아니라 이거지.'

그러니, 아우렐리아는 이 나라 최고의 음악원을 나온 수재임에도 악기 공방의 구석배기에 앉아 온갖 먼지를 들이마시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녀가 꿈꾸던 완벽한 결말은 아니었지만, 그녀는 꽤나 만족할 수 있었다.

아우렐리아과 함께 제르피움 음악 학교를 졸업을 한 여자 동기 중 일부는 늙고 성질 고약한 음악가의 밑에서 잔심부름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또 다른 일부는 모든 꿈을 포기하고 아이들의 예술적 감각을 기른다는 명목하에 고용되어 음악 교사를 가장한 보모 행세를 해야만 했고.

"그런 것들에 비하면, 악기 공방은 그리 나쁘지 않지."

비단 나고 자란 것만이 아니라, 자신에게 음악의 황홀함을 처음 알게 해 준.

'베른하드의 악기 공방.'

나무에서 나오는 먼지가 공방의 이름이 적힌 금속판에 내려앉은 것을 닦아낸 아우렐리아의 얼굴에는 아주 희미한 미소가 띄워져 있었다.

그래,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

딸랑-

"어서 오세요. 베른하드의 악기 공방입니다."

말을 마친 아우렐리아의 눈이 자연스럽게 방금 들어온 손님에게로 향했다.

빛을 받아 더욱 반짝이는 금발, 그리고 가장 뜨거운 불꽃의 색깔을 지닌 푸른 눈.

"아, 저...."

악기를 사러 온 이국적인 금발과 푸른 눈을 가진 남자.

나름 제르피움 최고의 음악 학교에서 꽤나 좋은 성적을 거두며 졸업한 그녀가 제 앞에 서있는 그가 누구인지, 모를 리가 없었다.

현시대 최고의 음악가.

악마의 재능을 훔쳤다는 진정한 비르투오소.

"레오나르 데이무스."

방정맞은 입이 저도 모르게 그의 이름을 내뱉었다.

놀란 아우렐리아 손을 올려 제 입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