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멸 엔딩을 원합니다

#1

“리히트.”

오래전 복속된 왕족 블랑시아 가와 그 주인이 되어 제국을 이룬 벨제스터 가. 

황궁에서 열린 오늘의 오찬은 두 가문이 평화의 상징으로 이어온 7년간의 약혼에서 나아가 혼인 날짜를 논하는 뜻깊은 날이었다.
 
그러니 감히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방금까지 함께 얼굴을 마주하고 담소를 나누던 사람들이 품에서 칼을 꺼내 들 거라고. 행여나 온기가 식을까 시종들이 분주히 내오던 음식에 독이 들어있으리라고. 든든하게 밖을 지켜주던 기사들의 창끝이 나와 내 가족을 향할 거라고.

끔찍한 단말마와 피로 낭자한 현장의 한가운데 있으면서도 이 모든 게 한없이 멀게만 느껴졌다. 꿈도 현실도 아니었다.

그럼 이건 대체 뭘까.

나는 멍하니 조금 떨어진 맞은편을 보았다. 황제를 향해 달려든 오라버니의 등 뒤로 날카로운 검날이 비죽 튀어나와 있었다. 그리고 그 너머엔 네가 있었다. 

“……리히트.”

오라버니를 관통한 검을 손에 쥐고선 굳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랑해.’ 

내 뺨을 어루만지며, 귓가를 지분거리며, 이곳의 문을 열고 들어서기 직전까지도 너는 내게 사랑을 속삭이지 않았던가. 영원을 약속하지 않았던가.

“……리히트.”

그렇다면 무슨 말이라도 해.
변명이든 뭐든 좋으니 제발 무슨 말이라도 해보란 말이야. 

“미안해.”

한참 만에야 입을 연 리히트의 짙푸른 눈동자가 거센 파도처럼 흔들렸다. 핏줄이 불거지도록 주먹을 꽉 쥐었다 편 그는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마치 내게 할 말은 이제 그것밖에 남지 않았다는 듯이.

“미안해, 아를렌.”

툭-.

뜨거운 눈물이 창백한 뺨을 적시며 흘러내렸다.

격랑에 휩쓸려 새카만 바다 위를 홀로 표류하는 것만 같았다. 잔혹하게도 리히트가 건넨 사과는 그것이 나의 현실임을 일깨워 주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들과 수만 가지의 의문, 지나간 시간이 한데 뒤엉켜 머릿속에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그러다 더는 내 옆에 서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