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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비가 콘크리트 땅을 거뭇거뭇 적시는 설날, 짙은 립스틱을 바른 술집 여자를 찾는 남자들의 발걸음이 연신 이어졌다. 시내는 업소 안의 지저분한 냄새와 닮은 군상을 건조한 시선으로 바라보다 주방 문을 쾅 소리가 나게 닫았다. 어째 평소보다 명절이 더 바쁜 서울 변두리의 룸살롱 장미. 주방 마감까지 한 시간 남짓 남았는데도 새 손님을 받은 웨이터 경수가 음식이 나가는 작은 틈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시내야, 과일 안주 제일 큰 걸로 빨리 좀 뽑아줘.”
“마감 한 시간도 안 남았어요. 그 안에 놀고 나간대요?”
“저 테이블은 한 시간이면 돈 백도 더 써. 오빠 오늘 떡값 챙겨가야지. 부탁 좀 하자!”
“떡값은 이미 다 받았으면서.”

시내는 툴툴거리면서도 조리대 위에 놓인 커다란 바구니 안에서 사과와 오렌지, 멜론, 바나나를 야무지게 꺼내었다. 능숙한 손놀림으로 마치 조각이라도 하듯이 순식간에 과일 안주 한 접시를 완성했다. 앞치마에 슥슥 물기 가득한 손을 훔치고서, 쨍- 군데군데 녹이 슨 낡은 벨을 눌렀다.

“과일이요.”
“고마워, 시내.”
“잠깐만요. 경수 오빠, 애연 언니 결국 안 나왔어요?”
“대목에 땡땡이야 그 계집애는. 애인이랑 있겠지.”

시내는 꼭 계집애니, 년이니 애연을 무시하는 경수가 못마땅했다. 이 삭막한 곳에서 우악스럽지 않은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인 그녀였다. 그래도 명절이라고 부쳐둔 부침개라도 나눠 먹으며 살갑게 새해 인사를 나눌 유일한 애연이 오늘따라 연락이 안 되니 시내는 마음이 좋지 않았다. 

한 시간이면 기백만 원은 쓴다던 무리가 마감 시간을 두 시간이나 넘기고서 떠나갔다. 나가면서도 누구 젖통이 어쨌네, 쌍판은 빻았네 입에 담기도 힘든 말을 뱉던 시커먼 사내들 소리가 들리지 않고서야 시내는 주방에서 나와 경수를 노려보았다.

“미안, 미안. 대신 용돈.”

징그럽게 짧은 머리, 쭉 찢어져 눈동자 형태도 알아보기 힘든 경수의 손에서 오만 원 지폐를 낚아챈 시내의 손에 반찬통 두 개가 담긴 쇼핑백이 들려있었다.
